|
땅끝마을 고흥소녀가장 단비 대학졸업소식...
2월17일 장안대학교 다니는 단비졸업소식을 전합니다. 10년전 단체설립 5년되는해 여의도에서 고검장 하시던 이건개 변호사님 을모시고 일하던때 였습니다.
1996년 단체설립하고 서울남부터미널부근 센추리오피스텔 11층에 사무실을 두고 아이들 돕는일에 뛰어들었으나 가난구제는 나라님도 어렵다는 말이있듯 체계없이 열정만 가지고 일하던 때라 2년만에 사무실을 비워주고 단체현판을 들고 지하실로, 옥탑으로 옮겨다녔습니다. 그러기를 수년하다 이건개 초대총재님을 만나 하시는일을 도우면서 간신이 아이들 돕는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때...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고싶어 강원도 원주 치악산계곡에 폐교를 빌려 여름방학수련회를 시작하려고 시,군,구 수련회 소식을알리는 홍보물과 협조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참가신청서가 담겨있는 편지가 한통 날아왔습니다.
사연인즉 땅끝마을 고흥군에사는 단비라는 초등학교5학년 아이였는데 이렇게 좋은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글과 수련회 가는날이 기대되어 가슴이 설레인다고 쓰여있었습니다. 땅끝마을에사는 조손가정의 아이였기에 태어나서 서울구경을 한번도 못한 상태였고 여름캠프같은 즐거운 행사엔 참가해보지 못한 아이였습니다. 편지받고 아이얼굴이 보고싶어 졌습니다.
그뒤로 수련회 행사준비에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행사를 바로 앞두고문득 단비 생각이나 단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단비는 부모없이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고있는 아이였는데... 할머니와 통화하니 아이가 너무어려 서울까지 데려다줄 사람이 없어 문제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러면 군청에 알아보겠다고하고 전화를 끊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일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군청에 전화를해 담당공무원과 상의를 하니 담당자께서 할머니와 상의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연락이왔는데 서울까지 자신들이 데려다 줄수도 없고 누군가 보호자가 동행해서 버스터미널에서 아이를 차테워 서울로 보내야 하는데 무릎관절이 아파 거동하기 어려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동행할수 없다고 하시니 어린아이를 자신들이 테려다 버스태워 서울까지 혼자 보낼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소릴 듣고 어떻게하든 고속버스만 태워 보내주시면 도착예정시간에 터미널에 가서 기다리겠다고 했으나 공무원신분상 그건어렵다고 했습니다. 만에하나 잘못됐을 경우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당시힘없는 저로서는 발을동동 구르고 여기저기 알아봤으나 도저히 방법이없었습니다.
이렇게 좋은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서울갈 그날이 기다려져 가슴이 설레인다고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실망할 생각을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다시 할머니께 전화를걸어 군청에서 차로 어른들을 모시러 올테니 버스만 태워 보내달라고 말씀드렸으나 몸이아파 꼼짝을 못하고 계신다고하며 신경써줘서 너무고맙다고 하시며 아이가 크면 그때 가도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단비야 이리와 전화받아봐 선생님께 신경써 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야지 하시며 전화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제가 여보세요하며 눈물이 터졌습니다. 단비야! 어떻게 하면좋니? 아저씨가 힘이 없어서 너를 서울로 데리고 올수가 없구나 하며 엉엉 울었습니다. 어떻게하면 좋니? 네가 얼마나 실망이 크니하고 울며 말을 하니 그녀석이 “저는 괜찮아요 제가크면 그때참석해도 돼요 아저씨 저 때문에 신경많이 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울지마세요” 하며 오히려 저를 위로했습니다. 한참을 아이와 통화하고 못내 전화를 끊고나서 눈물을 훔치며 제스스로 다짐을 했습니다. 내가 훗날 기필코 우리단체 전가연을 전국최고의 단체로 키우겠다, 전국각지에 지부를 두어 더 이상을 이런일이 없도록 하겠다 그리고 나 자신도 더욱힘을 키워 우뚝서리라 그래서 큰힘으로 아이들 눈물을 닦아주리라 하고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악전고투 끝에 세월이 흘렀고 7년세월이 흐른뒤 이제 어느정도 단체가 자리를 잡아갈 때 TV에 온통 손단비라는 인기가수의 노래와 이름 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가슴속에 서러움으로 묻어두었던 고흥소녀가장 단비가 생각이 났고 아이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 연락처를 찾았으나 그동안 사무실을 무수히 옮겨다니는통에 어디로 갔는지 찾을수가 없어 군청에 수소문을 했더니 소년가장중엔 없다고 하더니 혹시 조손가정 아이들중에 있는지 알아봐 주시겠다고해 연락이 왔습니다 있다고...
7년만에 고흥단비네 집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받으셨습니다. 옛날이야기를 드렸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하시며 단비는 대학에 합격하여 안산에 올라가고 집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연락처를 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단비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이가 받았습니다. 단비야 잘있었니? 하며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아이가 기억이 날듯말듯 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7년만에 안부를 묻고 서울신사역 부근에 사무실이 있으니 한번놀러오라고 하여 몇일후 대학생이된 모습으로 단비가 사무실을 찾아 왔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점심을 먹으며 지난 이야기들을 했고 그때는 미안했다고 너로 인하여 가슴이 너무 아팠노라고 이제 서울 가까이 올라왔으니 아빠처럼 생각하고 연락자주하고 지내라고 하며 아이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녀석은 기특하게도 학교수업이끝나면 편의점에가서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올A+를 받았다고 소식을 전해오곤 했습니다. 고흥군에서도 오지에 살았기에 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자 집이 너무 멀어학교근처에 방을얻어 자취하며 방과후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등 학교를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런 녀석이 집안형편이 어려우니 서울대 연고대는 못가고 전문대에 진학 했고 고교시절부터 과외한번 못받고 밤12시까지 아르바이트해야 방세내고 학교 다닐수 있었는데도 단비는 장안대 졸업생중에 과에서 수석으로 졸업을 하였고 총장상도 받았습니다.
한번은 단비야 아르바이트 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을 텐데 언제 공부하니 했더니 녀석왈 “저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학교수업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해요” 하는것 이였습니다. 요즘세태가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들 성화에 방과후 이곳저곳으로 끌려 다니며 사교육을 받아도 아이들 성적이 엉망인데 단비는 학교수업만으로도 올A+를 받으며 총장상을 받고 장안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인제를 썩혀서는 안되겠다 싶어 단비에게 전문대 졸업후 4년제 대학에 편입하라고 했습니다.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단비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올연말 3학년 편입시험 준비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저는 영국에 가있는 수연이가 다녔던 필리핀세부로 5월에 어학연수를 보내줄 생각을 이야기 했더니 아이가 너무도 좋아하며 꿈을 키우겠다고 했습니다.
어제는 단비졸업식 날이라 장안대에 방문하여 장하다고 꽃다발도 주고 사진도찍고 함께온 단비친구들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놀랍게도 4명의친구들이 단비졸업식을 축하하려고 고흥에서 올라온 고등학교 동창들이였습니다. 녀석들의 우정에 놀라하며 과천옆 의왕시에 있는 백운저수지로 아이들을 데리고가 유명가수 최진희씨가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기념사진도 찍어주고 서울로 올라와 친구들과 인사동에 놀러가겠다는 단비와 친구들을 신사역에 내려주고 왔습니다.
단비를 보면서 고생하며 아이들돕는 NGO운동을 해온 지난15년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1년 2월 전국소년소녀가장돕기시민연합중앙회 이영훈총장 드림
|